[소통잡화점 09]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2021-09-30     권영구 자문 위원

 

 

1. 명절 인맥

반년에 한번씩 명절이 돌아오면, 이 사람 저 사람과 접촉한다. 직접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고, 메일이나 문자라도 주고 받는다.

 

과연 그 사람들은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가족 DNA를 1/2, 1/4, 1/8 나누어 가졌다는 이유로, 1년에 딱 1번 그것도 마지못해 안부를 묻는 관계도 많다. 거래처 박과장에게 의례적인 명절선물 보내는 상황과, 무엇이 크게 다른 지도 실은 잘 모르겠다.

 

 

2. 막연한 믿음

가깝고 먼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엄마 아빠의 피성분 일부가 비슷하다고 알려진 사돈의 팔촌이면, 무조건 남보다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친구나 친한 동료는 다 외면할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들 하니 아무래도 남들보다는 나을 것이다, 어디선가 닌자처럼 나타나 그들만이 나를 도와줄 것이다.'

그런 막연한 믿음이나 심리적 보험일까.

 

 

3. 포도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사이도 있다. 학교를 같이 다닌 동창생 영숙이나, 같은 회사를 오래다니며 친분을 쌓아온 옆자리 김대리다.

 

"고등학교 동창이니까... 벌써 37년된 친구네요."

알고 지낸 기간이 길다고, 그 기간이 모두 친분으로 쌓인 것은 아니다.

 

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마트에서 사온 포도주를 무작정 냉장고에 오래 보관하고는, "10년 묵은 포도주"라고 자랑한다.

 

 

4. 우리가 남이가

환자분 치료에 대한 사연을 접하다보면, 놀라운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직장동료끼리 간이식을 해주거나, 아들친구엄마 병간호를 몇달씩 하는 사람이 있다.

 

혈연이나 학연이 인간관계의 핵심이라고 믿는 분들은, 절대 이해못할 상황이다.

"그럴 마음이나 시간, 돈이 있으면, 자기가족이나 친족, 친구에게 더 신경쓸 일이지. 남에게 뭐 그렇게까지야..."

 

 

5. 남보다 못한 관계

그렇다, 남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남의 시선이나 판단이 아니다. 내 마음속에 그가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고, 그의 마음에 내가 얼마나 스며들어 있는가 뿐이다.

 

그 사람이 엉뚱한 투자처에 평생 모은 재산을 집어넣는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재산은 자기판단으로 굴리는 거지, 나는 남일 뿐인데 뭘." 그런 생각이 들면 나는 상대에게 남일 뿐이다. 따라다니며 말릴 비장한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기 시작해야 한다.

 

연락끊은지 17년만에 자녀 결혼한다며 청첩장 보내는 먼친척이나 동창생은, 차라리 남보다 못하다고 느낄 지경이다.

 

 

6. 상처

"어디 취직자리는 좀 알아보고 있어?",

"선이라도 좀 보고는 있고?"

 

마음깊이 관심도 없고 특별히 염려하는 사이도 아니면서, 괜히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사람도 있다. 염려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다. 여기저기 상처만 입히는 언어폭력범일 뿐이다.

 

 

7. 함께 가꾸기

그리 어려울 것 없다. 내가 친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행동을 하지 못했다 싶으면, 이제 바로 시작하면 된다. 연결고리가 약한 관계라고 쭈뼛거리거나 눈치 볼 필요없다. 나에게 당신이 소중하니, 내 소중한 마음을 기꺼이 보여주면 된다.

 

그 다음은 기다림이다. 내 마음만큼 상대방도 반응을 보이면, 짜악짜악 손뼉이 맞고 있는 것이다. 기대에 못미친다 싶으면 한두번 더 시도해보고, 마음을 접으면 그만이다. 반응도 없는데 혼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남보기에 제 아무리 가까워 보이는 관계라도, 서로 물주고 비료주며 함께 소중히 가꾸지 않으면 점점 메말라간다. 멀어진 그 사람을 무조건 원망하기 보다, 내가 그 사람 호의를 무시하며 서운하게 한 것은 아닌지 나 스스로를 한번쯤 돌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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