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잡화점 04] 에펠탑에 올라가면 에펠탑을 찍을 수 없다
1. 에펠탑사진
해변가 바닷물에 발을 담근 채 해변사진을 찍을 수는 없다. 뭉게구름과 해안의 모래밭, 첨벙거리는 아이까지 멋진 프레임에 담으려면 한참 뒤로 물러서야 한다.
대학졸업후 파리에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난다. 아무 생각없이 에펠탑 바로 앞까지 달려갔지만, 엄청난 규모의 철골구조물 밖에 찍을 수 없었다. 다른 여행객이 나중에 알려준 정보를 들으니, 거의 지하철 1~2정거장 밖으로 벗어나야 겨우 에펠탑 전체가 나온다고 했다.
2. 다가섰다 멀어지기
가까이 다가서면 더 잘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잘 못 본다. 물론 에펠탑을 지은 철골 재질을 손으로 만지며 확인하고 싶다면야 30Cm 앞까지 접근해야 한다. 대부분 사람은 철골의 촉감보다 에펠탑 전체 모양새에 더 관심이 많으니 문제다.
하물며 건축가 전문가입장이라도 마찬가지다. 가까이서 멀리서 골고루 정보를 수집해 모아야 에펠탑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다. 멀리서만, 가까이서만 얻은 데이터만으로는 부족하다.
3. 근시안
가정이나 회사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우리와 너무 가깝다. 손만 뻗어도 닿을 수 있고, 입만 벌리면 모두가 주목할 수 있는 거리다.
너무 가깝다보니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 인과관계, 복합적인 영향, 미묘한 상호관계가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항상 핵심을 놓친다. 가까운 거리의 사물만 잘보고 멀리 보지 못한다는 '근시안적'이라는 말은 참으로 의미있는 표현이다.
4. 남의 일
반면 신문에서 접하는 다른 회사이야기,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이 쉬운 편이다.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니 훨씬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다.
한눈에 전체를 조망할 수 있으므로, 어느 한 구석 지엽적인 부분에 마음을 빼앗기지도 않는다. 그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몇가지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 보강만 하면 완벽해진다.
5. 의사의 가족진료
나와 직접적으로 얽힌 이해관계가 없다면, 적당히 무심해지면서 쿨하게 판단한다. 일상의 문제는 대부분 나 자신이 그 사건에 속해 있다보니, 완벽하게 객관적이기 어렵다. 인정에 끌리고, 이기적인 마음이 스며들기 쉽다.
의사는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의 진료를 하지 않는다. 제 아무리 수술을 잘하는 명의라도, 다른 의사에게 부탁한다. 사사로운 마음이 끼어들면 눈에 뻔히 보이는 사실도 다르게 보인다. 평소 하지도 않던 엉뚱한 행동을 하며 황당한 실수를 할 수 있다.
6. 장그래의 해법
내가 사건에서 멀어지기 힘들다면, 멀리 떨어진 제3자 의견을 들어보는 방법도 있다. 본인이 아무리 탁월한 능력자라 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문제를 타인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면 좋다.
꼭 나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을 찾아헤맬 필요도 없다. 내가 기꺼이 들어줄 수 있는 탁월한 멘토의 코멘트를 구하는 과정이 아니다. 일단 제 3자의 객관적 시각을 참고하려는 것 뿐이니, 그 누구라도 괜찮다. 오히려 비전문가일수록 더 좋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가 옆부서 철강팀 사고소식을 들었다. 화물을 운반하던 배의 바닥에 구멍이 나서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고 한다. 다들 전문가적 입장으로 대책을 내놓지만 어느 하나 마땅치 않다.
옆에 서 있던 장그래가 한마디 툭 던진다. "구멍이 났으면 때우면 되지 않나요?" 너무도 간단한 해법에 순간 정적이 흐른다. "오, 맞아. 잠수부 투입해서 땜질하면서 가면 기일에 맞출 수 있겠어!!"
7. 휴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일상에서 벗어날 기회는 없다. 가족과 친구라는 인간관계, 회사와 사업이라는 사회적역할은 한평생 내가 몸담아야 할 필연적 공간이다.
잠시나마 한발 물러설 수 있는 보석같은 시간이 있다. 바로 휴가기간이다. 사람마다 휴가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제각각이다. 조금만 의지를 가지면 그간 너무 가까이 있어서 안보였던 사실들이, 매직아이처럼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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