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의식 23부- 최첨단 장치가 사고를 일으킨다 ?
얼마전에 출장을 가기 위해 SOCAR를 빌렸는데 운전석 왼편 앞유리에 모빌아이라고 씌여진 조그만 동그란 기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ADAS라고 하는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이었다.
시동을 걸자 지름 5cm 정도의 원형 디스플레이에 모빌아이의 로고가 나타나고 3~4초 후부터 현재 도로 상황과 위험 발생 요소들과 같은 정보들을 알려주기 시작한다. 30km 이하로 서행할 때는 전방의 차량과 차선을 인식하지 않으나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경보음이 울린다. ADAS의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 기능은 전방추돌경보(FCW: Forward Collision Warning)와 차선이탈경보(LDW: Lane Departure Warning)이다.
앞에 가고 있는 자동차와의 충돌이 감지되거나, 방향표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벗어날 경우 경고음이 울리면서 좌석이 진동하며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전방추돌경보 시스템은 전방 차량과의 충돌 2.7초전에 운전자에게 경고를 보낸다. 뉴로모픽(Neuromorphic·뇌신경망을 모방해 만든 고성능 프로세서)칩을 탑재한 카메라가 순간 이미지 분석을 통해 현재 속도, 앞 차량의 속도 등을 계산해 충돌 위험을 감지해낼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에어백 등과 같이 사고 발생시 운전자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주는 방법인 Passive safety 장치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차량들이 사고를 미리 예방하기 위한 Active safety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요즘에 출시되는 자동차들은 기본적으로 ADAS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차들이 많아서, 차간 거리를 유지하는 자동제어 시스템, 차선이탈 결고 시스템, 충돌피해 경감 제동장치, 나이트 비젼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러한 안전장치에 의존도가 높아지고, 도로의 정비와 교통표지판 등이 개선되면서 많은 위험들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자동차 사고율은 좀처럼 개선되고 있지 않다. 운전자들이 과속하는 원인은 자신의 운전기술에 대한 확신보다는 운전환경의 객관적 상황의 개선이 그 이유라고 할수 있다. 자신에 대한 운전능력에 대한 확신은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될 뿐이며 운전상황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과속운전이 감행된다.
1993년 노르웨이 일부 지역에서는 트럭운전사들로 하여금 스키드 훈련을 받도록 법적으로 의무화 했다. 하지만 이 법이 만들어지면서 사고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사고가 증가해버렸다. 핀란드에서는 신규면허 취득자들에게 처음에는 연습면허를 주고, 그 이후에 사고가 없는 사람에 한하여 정식면허를 준다. 연습면허기간에는 얼어붙은 도로에서 사고를 줄이기 위해 스키드 훈련을 의무적으로 받게 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나이가 든 운전자들에게는 효과가 있었지만 젊은 운전자들은 오히려 사고를 더 많이 일으켰다. 교습을 받은 과정에서 운전기술이 향상되자 얼어붙은 도로에서의 실력을 너무 과신했기 때문이었다.
요즘에는 레이저 기술을 이용하여 차가 충돌하려고 하면 자동적으로 브레이크가 걸리게 하는 장치가 있는데 이 때문에 한눈 파는 운전자가 늘어나 버렸다. 나이트 비젼(Night vision)를 장착한 자동차가 어두운 밤에 지나치게 속력을 내는 바람에 큰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인간이 위험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행동이 변화하는 리스크보상심리 때문이다. '리스크 보상'이란 낮아진 위험을 메우기 위해 행동이 변화하여 원래의 위험수준으로 되돌아 가 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 문제는 안전공학자들에게 매우 괴로운 문제이다.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장치를 개발했는데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이 오히려 위험을 초래하는 쪽으로 행동한다면 개발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러한 행동현상을 1982년 캐나다의 교통학자 제럴드 와일드(Gerald J. S. Wilde)가 발표한 리스크 항상성(Risk Homeostasis theory)이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학적/제도적/관리적 대책 덕분에 위험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면 위험을 높이는 방향으로 행동을 변화시키려 한다. 왜냐하면 위험을 받아드리는 것은 바로 이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안전대책으로 사고가 줄어든 경우 사람들은 위험이 낮아졌다고 생각하고, 위험을 자신이 목표로 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려고 한다.
와일드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떠한 행위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익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의 주관적 추정치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받아드리려고 한다.
2. 사람들은 안전을 위해 행동을 바꾸지만, 그가 자발적으로 책임져야 할 위험의 양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지 않는 한 행동의 위험성은 변화하지 않는다.
이 이론은 안전연구자들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도로의 표지 개선이나, 도로설계 등을 검토하여 ‘달리기 쉬운’ 도로를 만드는 것은 사고 감소로 연결되지 않는다. 무엇을 해도 사고는 줄어들지 않으니 따라서 대책도 연구도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리스크 항상성 이론에 의하면 위험의 목표수준을 바꿀 수 있는 대책이 없는 한 어떠한 안전대책도 단기적으로는 성공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원래의 수준으로 되돌아가 버린다.
하지만 이러한 안전공학자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안전기술의 향상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보자. 과거의 구불구불했던 영동고속도로를 개선공사를 통해 일직선의 도로로 재시공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울에서 강릉까지의 차량의 통과속도가 빨라졌다. 과거에 4시간 걸려 가던 길을 2시간만에 갈수 있으니 생산성은 2배가 되었다. 이로 인해 교통량이 2배가 되면서 사고율의 변화가 없었다 하더라도 자동차 1대당 사고율은 반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안전동기부여에 따라 운전자 개개인이 위험의 목표수준을 낮추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그 사고율은 더욱 줄어든다. 안전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사고 위험이 줄어들어서 좋고, 편익을 목표로 하는 사람도 위험은 그대로이나 생산성이 2배나 좋아졌으니 양쪽 다 좋다. 그러니 안전기술의 도입은 당연히 환영할 일인 것이다.
결국은 안전의 문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문제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그 나라의 경제규모와 국민의 GDP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수준과 의식수준의 문제이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 교통사망자 1위의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차량에 탑재하는 여러 가지 훌륭한 안전장치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개개인이 자신이 허용할수 있는 위험의 수준을 낮추어 안전마진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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